반도체랑 AI 특허를 주로 다루는 변리사다. 일하면서 떠오른 질문, 여행에서 본 풍경, 읽다가 밑줄 친 문장을 한군데 모았다. 흩어지기 쉬운 생각들을 붙잡아두려고 시작했는데, 비슷한 호기심을 가진 분이라면 골라 읽으셔도 좋겠다.
1990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자랐다. 고려대학교에서 전기전자공학을 했고, 반도체 회로 설계와 통신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IP필드로 흘러왔다. 2018년 변리사가 됐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건을 대리하던 시절을 거쳐 지금은 역삼에서 마일스톤 특허법률사무소를 대표로 이끈다.
하는 일을 한 줄로 줄이면, 기술이라는 언어를 비즈니스와 법률의 문법으로 옮기는 통역이다. 반도체, AI, 블록체인이 주 무대고, 한·미·유·중·일을 오가는 크로스보더 일을 자주 한다. GPT-4와 Transformer 특허를 직접 출원해봤고, 요즘은 반복 업무를 시스템으로 자동화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쓴다.
믿는 건 직접 보거나 해본 것뿐이다. 사주나 점성술 같은 건 잘 안 믿고, 데이터가 없으면 일단 의심한다. 그러면서도 결정은 프레임을 먼저 세우고 사실을 거기 맞춰 정렬하는 편이다. 모순 같지만 둘 다 나다. 가장 큰 프레임은 시간과 우주를 어떻게 보느냐다. 민코프스키 좌표를 본 뒤로 미래도 과거처럼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 얘기는 아래 믿는 것에 따로 풀어뒀다.
스무 해 넘게 찍힌 출입국 도장을 지도에 옮겨봤다. 점이 클수록, 서울에서 뻗는 선이 굵을수록 자주 간 곳이다. 일본이 압도적이고, 유럽은 도시가 촘촘해 따로 떼어 확대했다. 아래쪽은 앞으로 갈 곳까지 섞여 있다.
싱가포르랑 삿포로를 놓고 한참 쟀다. 싱가포르는 호텔 멤버십 쓰기엔 좋은데 8월 적도 더위가 아기한테 무리고 비용도 셌다. 결국 비행 세 시간 안쪽에 선선하고 100만 원쯤 싼 삿포로로 기울었다. 오전엔 밖에, 한낮엔 숙소에서 쉬고, 저녁은 가볍게, 아기 리듬에 맞춰 동선을 느슨하게 짰다. 아직 표는 안 끊었다.
상표 쪽 제일 큰 국제 행사인 INTA 총회 참석차 갔다가, 그동안 메일로만 주고받던 해외대리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화면 너머 이름이 사람 얼굴로 바뀌는 자리. 크로스보더 일은 결국 이런 대면이 절반이다.
영국변리사회(CIPA) 합동이사회에서 "Introduction to recent patent prosecution system in Korea 2025"를 발표했다. 솔직히 내용보다 발음이 더 신경 쓰였다. 청구항 한 줄은 한국어로는 눈 감고도 설명하는데, 같은 논리를 영어로, 그것도 본토 변리사들 앞에서 매끄럽게 풀어내는 건 다른 종목이었다. 이튿날엔 High Court로 가 Meade 판사를 만나 역외 관할권과 변리사·변호사 협업 모델을 이야기했고, EPLAW도 들렀다. 긴장한 만큼 남는 것도 많은 자리였다.
룩셈부르크의 UPC 항소법원에서 Grabinski 판사를 만났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법원이 벌써 800건 가까운 사건을 굴리고 있었고, 중앙부 무효 사건과 가처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밀유지 클럽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직접 들었다. 유럽 특허 분쟁의 지형이 지금 다시 그려지는 중이라는 걸, 책이 아니라 그 건물 안에서 실감했다.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 변리사회(CNCPI)에서 같은 주제를 발표했다. 런던보다 힘들었다. 발표가 끝나자 PPH, K-discovery, 번역문 추후 제출, 권리 회복(restoration)까지 질문이 쏟아졌는데, 영어로 듣고 한국 제도를 영어로 되받아 설명하느라 머리가 풀가동됐다. 준비해 간 슬라이드 밖의 질문이 제일 무서웠다. 그래도 한국 실무를 제대로 전했다는 감각은 분명히 남았다.
뮌헨은 유럽 특허의 수도였다. EPO에서 통합특허 등록이 7,000건을 넘겼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독일변리사회(PAK)에서 또 한 번 발표하며 G1/24 결정과 청구항의 무게를 논했다. 마지막 날엔 UPC 뮌헨 지부에서 Zigann 판사를 만났다. FRAND, 인정션, Long Arm Jurisdiction까지 실무의 한가운데로 파고든 대화였는데, 정작 그는 아직 한국에 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중립 기관이 부르면 강연하러 한국에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언젠가 그 자리를 만들고 싶다.
출장만 다닌 건 아니다. 유럽은 갈 때마다 2~3주씩 길게 묶어 도시를 여러 개 잇는다. 파리를 거점 삼아 샹파뉴에서 와인을, 무스티에생트마리에서 프로방스의 절벽 마을을 봤고, 이탈리아에선 피렌체·로마·포지타노를, 알프스 자락의 베른·인터라켄·그린델발트에선 설산을 올려다봤다. 프라하를 지나 대서양 끝 리스본·포르투까지, 멀리 아테네도. 회의장에서의 유럽과 일정표 밖의 유럽이 같은 여정 안에 포개진다.
이건 순전히 놀러 간 거였다. 도시를 효율로 재단하지 않고, 들뜬 여름 한복판을 그냥 통과했다. 일정표 없이 다닌 며칠이 오래 남는다.
한·미·유·중·일을 흔히 IP 5대 권역이라 부르는데, 중국은 늘 말로만 듣다가 직접 갔다. 시스템을 눈으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감이 잡혔다. 안 믿기면 가본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스무 해 기록을 펼쳐보니 일본 도시들이 압도적이었다. 2023년부터 빈도가 확 뛰었는데, 글로벌 IP 일이 늘어난 시기랑 정확히 겹친다. 발자국이 곧 그 시절의 일감 지도인 셈이다.
미국 서부를 길게 돌았다. LA의 느슨한 햇볕과 라스베가스의 과장된 밤은 결이 정반대였는데, 둘 다 미국이라는 게 재미있었다. 이때만 해도 몇 해 뒤 같은 도시를 일로 다시 찾을 줄은 몰랐다.
지도 아래쪽엔 아직 안 간 곳도 있다. 시카고는 일 때문에 한 번 더 가고, 2027년엔 LA를 다시 거쳐 샌디에이고까지 내려간다. 상표 쪽 큰 행사가 거기 열린다. 그 김에 하와이도 끼워 넣을 생각이다. 일과 쉼을 한 동선에 묶는 버릇은 여전하다.
청구항 하나를 들여다보면 그 뒤에 공급망이랑 지정학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실무로 다루다 칼럼으로 풀어본 것들을 모았다.
갤럭시 S23 울트라랑 아이폰 14 프로 맥스 카메라를 맞붙여 칼럼을 썼다. 화소 숫자 비교가 아니라 픽셀–이미지센서–ISP 세 계층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삼성 미국특허 도면을 직접 끌어와 단면도부터 풀었다. 핵심은 픽셀 크기·광학 포맷·비닝이 서로를 잠식한다는 것. 더 큰 숫자가 늘 더 좋은 사진은 아니다. 그 이유가 도면 안에 있었다.
반도체 보릿고개의 구조적 원인에서 출발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시대로 넘어가는 칼럼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SiC 기반 PMIC가 주행거리를 10% 넘게 끌어올리는 메커니즘. 한국의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이 1%대라는 사실을, 약점이 아니라 비어 있는 시장으로 다시 봤다.
LG AI연구원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GPT-4와 Transformer 출원을 직접 맡았다. 준비하느라 GPT-1/2 논문이랑 트랜스포머 원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AI 발명은 알고리즘만 들고 가면 거절당하기 쉬워서, 학습·추론·시스템으로 쪼개 청구해야 한다. 결국 추상 아이디어와 기술적 효과의 경계를 어디에 긋느냐 싸움이다.
AI 시대의 핵심 메모리가 된 HBM을 두고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엔비디아의 GPU·CUDA 포트폴리오가 신규 진입자를 막는 구도까지 겹치면서, 한국 메모리 업계의 IP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권리화의 첫 단추는 원천 논문을 끝까지 읽는 일이다. 누가 썼고, 무엇을 바꿨고, 왜 지금 중요한지를 따라가다 보면 기술의 출처에 닿는다.
Google Brain·Research 팀이 2017년에 낸 논문. 순환도 합성곱도 없이 어텐션만으로 시퀀스를 처리하는 트랜스포머를 제시했다. RNN의 순차 병목을 걷어내 병렬 학습의 문을 열었고, 오늘의 GPT·BERT·Claude가 전부 이 골격 위에 서 있다. GPT-4와 Transformer 출원을 준비하며 청구항 설계의 기준점으로 삼았던 글이라, 나한테는 학술적 의미를 넘어선다.
AI는 트랜스포머·CNN·RNN에서 LLM·디퓨전·멀티모달까지, 반도체는 CPU/GPU/NPU와 DRAM·HBM·이미지센서, 블록체인은 스마트 컨트랙트와 L1/L2·DeFi·NFT. 셋이 겹치는 지점에서 제일 까다롭고 제일 재미있는 청구항이 나온다.
경제·정치서는 공부 노트처럼, 소설은 그냥 감상하며 읽는다. 같은 사람의 다른 독서법이다. 서평은 감상이라기보다 읽은 걸 행동으로 옮길 데가 있나 따져보는 쪽에 가깝다.
직접 보거나 해본 것만 믿는다. 그러면서도 결정은 사실보다 프레임을 먼저 세운다. 가장 큰 프레임은 시간과 우주를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고, 가장 작은 프레임은 오늘 무엇에 힘을 쏟느냐는 것이다.
민코프스키 좌표를 처음 제대로 들여다본 뒤로 생각이 하나 박혔다. 과거·현재·미래가 인과적으로 줄지어 흐르는 게 아니라, 미래도 과거처럼 이미 거기 있는 것 아닐까. 특수상대성에서 동시성은 관측자마다 다르고, 모두가 공유하는 객관적인 '지금'이라는 평면은 없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은 세계의 성질이 아니라 의식이 느끼는 방식일지 모른다. 물리철학이 블록 우주라 부르는 그림이다.
분기는 또 다르게 본다. 양자적 갈림은 진짜 불확정이 아니라 여러 우주로 평행하게 갈라지는 것일 수 있다. 에버렛의 다세계처럼. 그러면 미래는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니라 '모든 가지가 다 일어나는 방식으로 정해진' 것이 된다. 블록 우주와 다세계를 포개면, 결정론과 다중우주가 한 그림 안에 모순 없이 들어온다.
분명히 해둘 건, 이건 증명된 정리가 아니라 같은 실험 데이터를 두고 경쟁하는 해석들이라는 점이다. 어느 것도 결정적으로 입증되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 직관을 버리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미래가 정해졌나"보다 "흐른다는 느낌은 대체 왜 있는가"일지도 모른다는 것. 물리 방정식 어디에도 '지금'을 특별 취급하는 항은 없으니까.
AI를 오래 다뤄본 결론은 단순하다. AI는 위협도 만능도 아니라 하나의 연장이다. 그것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서 막히는지 아는 것이 먼저다. 정형화된 작업일수록 AI가 빠르게 대체하며, 사람에게 남는 것은 전략적 청구항 설계와 도면처럼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판단이다.
AI가 어떤 능력을 먼저 획득하는지는 벤치마크 점수가 아니라 정답의 정오를 기계가 채점할 수 있는지로 갈린다. 수학과 코드를 AI가 먼저 대체한 것도 정답과 오답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AI의 능력을 ‘보상을 정오로 판정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 ‘지금은 안 된다’를 단정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의 학습 방식이 few-shot에서 강화학습으로 옮겨간 것처럼, 그 경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청구항은 바로 그 경계에 놓여 있다. 무엇이 좋은 청구항인지는 보상 함수로 정의할 수 없다. ‘좋음’을 보상으로 명세할 수 없으므로, 현행 훈련 체계에서 기계는 이를 스스로 최적화하지 못한다. 정렬 연구가 보상 명세 문제라 부르는 지점이다. 어떤 모델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행 보상 체계에서는 아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